프랑스-기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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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2.2. 현대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프랑스기니의 관계. 기니는 역사적으로 프랑스의 지배를 받으면서 프랑스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현대 이전[편집]


19세기에 기니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프랑스는 기니내의 소왕국들을 차례차례 점령하면서 기니 지역을 차지했다. 그리고 기니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프랑스는 기니를 식민지배하던 당시 광산을 개발하고 인프라도 세웠지만전기, 하수구 등 식민지 철수하면서 인프라를 깡그리 파괴시켜 버렸다, 그와 동시에 프랑스의 탄압도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랑스령 지역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지역의 독립열기는 높아졌고 이에 프랑스는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들을 각각 독립국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기니도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프랑스 공동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인프라를 철수하는 등 기니를 압박하기도 했다. 예시로 기니가 CFA 프랑을 거부하고 독자 화폐를 발행하자 Opération Persil[1]을 실행하여 위조 지폐 발행 등으로 기니에 혼란을 주려고 했지만, 세네갈을 거쳐 기니로 향하는 무기가 발각되는 등 작전의 실체가 드러났고 결국 프랑스는 이 작전을 중단하였다. 기니는 프랑스에서 독립한 뒤에 중국, 소련과 수교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등 프랑스를 견제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메드 세쿠 투레 문서 참고.


2.2. 현대[편집]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서 프랑스의 영향을 남아있다. 특히 프랑스어가 공용어이고 프랑코포니에 가입되어 있다. 독립 직후에 정치, 경제에서 프랑스와 긴밀히 협력하는 편이지만,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다. 기니의 경제상황이 안 좋다보니 기니에서도 프랑스로 이주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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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제 이름 퍼실에서 따온 것.